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혹

  • 등록 2008.03.16 13: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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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조선 충돌, 조작인가 사고인가

충남 태안앞바다에서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지 100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고원인을 놓고 갖가지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사고당일 삼성중공업 크레인 예인선의 행적을 추적해봤다.


이 사건은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경 대통령선거를 불과 12일 남겨놓고 삼성중공업 소속의 크레인 예인선단이 기름을 싣고 정박 중이던 현대오일뱅크의 용선인 ‘허베이 스피리트호’를 들이받아 발생했다.


이 사고로 1만 2,547킬로리터의 기름이 유출됐으며 태안반도의 연안생태계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도 죽어가고 있다.


사고 당시의 현지 상황을 잘 아는 태안의 어민들은 예인선단이 고의로 유조선을 들이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주장에 공감하며 의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의혹은 예인선단이 12월 6일 오후 2시 50분 인천항을 출항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기상청은 이날 새벽 5시에 “서해 중부 해상에 물결이 높으니 해상 교통에 유의하라”는 발표를 했으며, 오후 10시 40분에 발표된 기상예보를 통해서도 “7일 새벽 3시를 기점으로 서해 중부 먼 바다에 풍랑주의보가 발효될 것”을 예고했다.


이날 바다에는 초속 10~14m의 강풍과 3~4m의 파도가 일고 있었다. 그러나 삼성중공업 소속의 크레인 예인선단(크레인 부선 ‘삼성1호’, 주예인선 ‘삼성T-5호’, 부예인선 ‘삼호T-3호’, 연락선 ‘삼성A-1호’)은 이 같은 풍랑주의보 속에서 항해를 강행했다. 이에 대해 선주 측의 지시 없이는 이 같은 무모한 항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태안 어민들의 주장이다.


기상특보를 무시한 예인선단은 사고일인 7일 새벽 5시경 사고해역 부근인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도 남서쪽 해상을 지나고 있었다. 대산해양수산청 관제센터에서 유조선을 향해 접근하고 있던 예인선단에 초단파(VHF) 16번 채널로 교신을 시도한 것은 이날 새벽 5시 23분이었다.


이후 계속 호출을 하였으나 통신기기가 설치되지 않은 크레인 부선 외의 나머지 배 세 척 모두 응답이 없었다. “16번으로 호출해야 하는데 12번으로 신호를 보내 수신하지 못했다”고 삼성중공업 측은 주장했다. 16번 채널은 항해하는 선박들이 교신하는 만국 공통의 비상 주파수이다.


관제센터가 이를 제쳐두고 12번 채널로 호출했을 리는 없다. 예인선단이 긴급 비상 호출에도 응답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당시 예인선에 타고 있던 한 선원은 “예인선단과의 무선을 위해 비상 주파수 볼륨을 최하로 낮춰 놓았었다”고 증언했다.


모든 배의 공용 교신채널이자 조난 긴급호출을 하는 비상 주파수인 16번 채널을 의도적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한 것이다. 충돌 약 50여분 전인 6시 20분경에야 예인선 선장과 휴대폰 통화가 이루어져 관제센터는 “유조선을 피해 운항하라”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예인선단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태안 어민들이 증언하는 예인선단의 항적은 언론의 보도와는 다르다. 삼성중공업의 예인선에 의해 들이받힌 현대오일뱅크의 원유를 실은 유조선은 뱃머리를 북동쪽, 즉 대산항 방향으로 두고 있었다. 태안의 어민들은 예인선단이 이러한 유조선과 해안 사이를 통과하여 남쪽으로 향하던 중 진로를 오른쪽 방향으로 180도 바꾸어 유조선을 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조선의 좌현과 크레인 부선의 우현이 부딪친 사실이 어민들의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충돌은 크레인 부선을 왼쪽에서 끌던 삼성물산 소속 예인선 ‘삼성T-5호’(292t)에 매달린 지름 4.75센티미터 굵기의 와이어로프가 끊어지면서 일어났다. 와이어로프가 끊어진 크레인 부선이 파도에 떠밀리다 몇 차례에 걸쳐 유조선과 충돌하면서 유조선의 기름이 유출됐다는 것이 삼성중공업 측의 주장이다.


와이어로프는 충돌 10여분 전인 6시 52분에 끊어졌다고 태안해양경찰서는 밝혔다. 예인선단은 그제서야 보조 예인선인 ‘삼호T-3호’를 통해 “통제불능 상태이니 유조선에 연락해 이동시켜 달라”고 관제센터에 무전을 쳤다.


6시 56분의 일이었다. 끊어진 와이어로프는 1995년에 일본의 동경제강에서 생산되었으며 그동안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작년 여름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실험결과 와이어로프는 강도 등에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와이어로프에 이상이 있었다는 수사결과도 없다. 검찰은 “기상악화에도 불구하고 항해를 하다 무리하게 와이어로프를 작동시킨 데 따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로프의 파단면을 보면 자연적으로 끊어졌는지 인위적으로 끊었는지 알 수 있을 터이지만, 끊어진 와이어로프의 파단면에 관한 수사내용은 없다. 물론 이를 지적한 언론도 없다.


MBC〈PD수첩〉은 지난 1월 29일 와이어로프가 끊어진 후 유조선이 충돌할 때까지 급박한 상황에서 예인선 ‘삼성T-5호’의 키를 잡고 총지휘를 했어야 할 선장이 보이지 않았다는 선원의 증언을 방송했다. 선장이 없어 선원들은 우왕좌왕했고 충돌 직전까지 자동항법장치를 통해 운항했다고 한다. 이는 크레인 부선이 유조선과 충돌하는 것을 방치해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또한 예인선 선장은 사고 경위 등을 은폐하기 위해 항해일지를 거짓으로 기록한 사실이 해경에 의해 밝혀졌다. 즉 예인선단은 7일 새벽 기상이 악화돼 선장과 항해사가 함께 회항을 시도하는 등 안전조처를 했으며 충돌 위험을 미리 알지 못했고, 충돌 직전 예인선이 부선을 옆에서 밀어 충돌방지에 노력했다는 점 등이 시간대별로 허위로 기록됐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점만 봐도 인위적 사고라는 강한 의혹이 일고 있는 대목이다.


충돌 후에 관련 당국의 태도는 ‘조작’이라는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어민조합인 소원연합영어조합법인 이상원 사무국장은 “당시 태안에는 해사채취를 위한 바지선이 6,000㎥짜리부터 여러 척이 있었다.”며 “이를 갖다 유조선 옆에 대고 쏟아져 나오는 기름을 받아내자”고 해경에 제안했다. 그러나 해경은 “이미 오일펜스를 쳤고 초동대처가 끝났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충돌 후 13시간이 지난 오후 8시경 소원면 개목항에 기름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30센티미터 두께의 기름층이 태안 앞바다를 뒤덮었다. 방제업체에서 내준 흡착포는 금새 바닥이 났다. 방제업체는 “재고가 없다”며 흡착포와 오일펜스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닷새가 지나자 없다던 흡착포와 오일펜스가 마을마다 산더미처럼 쌓였다고 어민들은 말하고 있다.


또 다른 의혹은 현행법상 3,000톤급 이상의 화물선에는 의무적으로 항해데이터기록(VDR)을 설치하게 되어있다. 이 기록은 보통 12시간 보존되고 사고가 나면 즉시 VDR 장치 작동을 중지해서 기록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해경은 사고 직후 바로 회수해야 할 VDR 자료를 사고발생 1주일 만에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수 후 확인해보니 사고 당시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허정균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대표는 “유조선충돌은 단순사고가 아닌 조작일 가능성이 높다.”며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갯벌환경 평론가인 허정균 대표는 지난3일 ‘인터넷 부안21’의 기고를 통해 “이제 또다시 삼성 기름유출 사고에 얽힌 숱한 의혹은 ‘한반도 대운하’로 가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 쌍방과실로 인정


홍콩 선적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는 선주상호보험에 가입해 있어 최대 1,300억원까지는 지급이 가능하다. 그리고 피해액이 이 금액을 넘길 경우에는 국제적인 펀드인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에서 추가로 1,700억원을 부담하므로 3,000억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반면에 삼성중공업은 삼성화재에 두 가지 보험을 들었다. 하나는 선박 보험으로 360억원에 달하고 다른 하나는 선주배상 책임보험으로 500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대략 410억원 정도를 보험에서 보장하는 셈이다. 그것도 삼성화재 측은 해외 재보험으로 약 90% 가까운 돈을 넘겼기 때문에 삼성화재가 직접 내는 보험금은 전체 보험가액의 10% 내외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삼성 측이 내는 돈은 고작 약 40억여원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법원에서 삼성중공업의 고의나 중과실로 판정이 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 경우에는 삼성중공업이 피해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기름유출 사고를 수사해온 대전지검 서산지청은 지난 1월 21일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중과실’ 혐의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기로 했다”며 “삼성중공업의 예인선단과 유조선인 허베이스피리트호 쌍방의 과실이 모두 인정된다.”고 밝혔다.


예인선단은 기상악화에도 무리한 운항을 했고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는 관제센터의 요청에도 불구 적극적인 충돌방지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검찰은 “고의 또는 무모한 행위로 인한 ‘중과실’이 인정될 경우 무제한 배상이 이뤄지지만 형사상 관계없는 일로 민사법정에서 판단할 부분이다”면서 “다만 고도의 주의 의무가 있는 선장에게 업무상 과실이 있다는 말은 중과실이라는 말과 등치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삼성중공업이 사전 공모를 통해 예인선단 항해일지를 조작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개별 선박들의 항해일지 내용이 다른 점에 비춰 회사 측의 지시나 강요, 공모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이 같은 검찰 발표에 대해 태안 주민들은 ‘삼성중공업 봐주기 수사’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삼성중공업 소속의 예인선이 관제센터의 경고를 무시해 사고가 났는데도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삼성중공업은 이러한 검찰의 공소내용조차 부정하고 있다. 1월 29일 삼성중공업은 대전지법 서산지원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선박 충돌사고는 허베이스피리트 유조선 측의 안일한 대응으로 발생한 것이지 삼성중공업 측의 과실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예인선 선원들과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없고, 항해와 관련된 부분은 예인선 선원들의 독자적인 업무 범위에 속하는 만큼 삼성중공업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삼성의 태도에 대해 태안 주민들은 상경투쟁을 벌이며 격하게 삼성을 성토하고 있다.


‘삼성 봐주기’ 특별법


삼성중공업 기름유출 사고발생 엿새 뒤인 지난해 12월 13일부터 국회에서 태안지원특별법이 논의돼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에서 각각 특별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국회농림수산위는 지난 2월 13일 특별법 논의를 거부했다.


그러다가 2월 19일에야 각 당이 제출한 법안을 병합 심사하고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 피해주민 및 해양환경 복원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위원회 대안으로 의결한 후 법안의 체계와 자구 심사를 담당하는 법사위에 넘겼으며 22일 국회 본회를 통과시켰다. 184명의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해서 183명 찬성, 1명이 기권을 했다.


특별법안의 골자는 손해보전 지원과 관련해 ‘유류오염손해배상 보장법’에 따른 손해보상금 또는 보상금을 지급받기 이전에 국제기금에서 인정한 보상한도액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선지급하며 이후 국제기금 등에 구상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피해 보상 선지급 항목은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에서 발의한 대로 '의무규정'이 아닌 '임의규정'으로 명시되어 있어 상황에 따라 정부가 지원을 안 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즉 정부가 선지급을 언제 어떻게 보상하겠다는 구체적인 기준이나 계획도 없이 막연히 ‘할 수 있다.’ 라고 규정한 것이다.


지원을 한다하더라도 정부가 선지급을 국제기금에서 산정한 기준으로만 삼겠다면 바지락 캐서 먹고 살던 맨손 어업자 등 국제보상관례를 벗어난 피해는 정부의 선지급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또한 환경피해에 대한 배상도 없거니와 실질적인 피해회복이 어려워 어업 종사자가 업종을 전환해야 하는 경우에 대한 지원이나 이번 사고로 인하여 소득이 격감하게 된 것에 대한 소득보전 등도 빠져있다.


국제기금협약의 보상한도액을 초과하는 부분은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사고 책임자인 삼성이 배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고 자원 봉사자가 흘린 땀의 대가나 환경오염에 관한 복구 책임도 삼성에게 묻는 일을 특별법에서 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인 삼성에 대한 책임 규명과 그 배상을 받아내는 조항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태안 피해주민들은 철저히 ‘삼성봐주기’를 위한 법이라며 강하게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박종이 기자 mgs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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