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님, 편히 쉬소서 / 배용환
슬퍼마라,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세상 빛을 다스리다 잠시, 부엉이의 울음을 잊었습니다
유년의 꿈이 이런 거였다면 차라리, 어둠을 택하겠습니다
온 정열 바쳐 불을 밝혔습니다만
목청껏 부엉부엉, 소리쳤습니다만
세상이란 것이 귓구멍을 싸막고 사는 자들이 너무 많아
내 가슴에 비수로 꽂혀버렸습니다
그래서 부엉이가 되기로 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슬픔을 곱씹으며 부엉이바위에 섰습니다
칡넝쿨 같은 세상은
부엉이 바위에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내 먼저 죽어서라도 기어이
기어이, 이 신새벽을 깨우고야 말겠습니다
님이시여
야금야금, 어둠을 깨물어 주소서
봉하산 부엉이의 이빨로 이 땅을 깨물어 주소서
나폴나폴, 아카시아꽃잎처럼 절벽을 날아서라도 이 땅을 흔들어 주소서
잡목 숲 우거진 생의 골짜기마다 도사린 늑대들의 눈빛 번뜩이는
모진 세월의 지껄임들 앞에 기어코
잠든 새떼의 노랫가락, 들려주소서
하지만 남은 자의 슬픔은 어찌하시렵니까
봉하산에 어린 입술들은 미처, 볼 새가 없었습니까
우주가 무너져내리는 이 고통을 참아야만 합니까
남은 자들의 몫이라 여기겠습니다
남은 자들의 할 일이라 여기겠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임의 숭고한 뜻, 길이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가슴 깊이 새겨두고
별빛 하나 반짝일 때마다 임의 목소리 듣겠습니다
투명한 적멸 앞에 하늘이 흐느끼고 땅이 통곡하는
세상의 절규, 잊으소서
이제 그만 잊고 편히 쉬소서
길이 후대에게 큰 뜻 적어 넘기겠습니다
편히, 쉬소서
캄캄한 세상은 지금, 노을빛 근조등 앞세우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