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연대 백형태 기자 ] 병오년 새해. 안산의 삼거리 한켠, 사람들이 오가며 방향을 바꾸는 자리에서 무연사(巫緣師) 백경(白鏡) 이화자 선생을 만났다.
길이 갈라지는 곳이지만, 이곳은 서두르지 않는 공간이었다. 굿당이라기보다 사유의 자리라 불러야 할 공간이다.요란한 북소리도, 화려한 장식도 없었다. 대신 오래 질문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침묵과 단정한 말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이화자 선생의 굿은 해답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의 굿은 삶을 대신 결정하지 않고, 삶을 정면으로 묻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굿은 편안하지 않다. 그러나 이화자 선생의 철학은 오래 남는다. 이에 본지는 말보다 침묵속에서 형성된 이화자 선생의 강렬한 내면 세계를 들여다본다.
◇많은 사람들이 굿을 하면 운명이 바뀐다고 생각하는데.
- 사람들이 말하는 ‘운명’이라는 건 대부분 자기 삶을 설명하기 어려울 때 붙이는 이름입니다. 굿이 운명을 대신 고쳐준다고 믿는 순간, 사람은 자기 삶에서 한 발 물러서게 됩니다. 굿은 운명을 바꿔주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내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왜 같은 일이 반복되었는지를 차분히 바라보게 만드는 자리입니다.
- 그 질문 앞에서 태도가 바뀌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굿은 외부의 힘이 개입하는 사건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스스로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입니다.
◇선생님의 신굿에서 말하는 ‘신’은 어떤 존재인지.
- 신을 명령자나 판결자로 생각하면 굿은 위험해집니다. 신은 ‘이렇게 살아라’고 지시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제가 경험한 신은 거울에 가깝습니다. 굿판에서 나오는 말들은 신이 새로 던져주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오랫동안 외면해 온 자기 삶의 모습이 드러나는 과정입니다. 신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자기 삶을 보도록 돕는 매개입니다.
◇그렇다면 굿은 신에게 비는 의식이라고 보기는 어렵겠군요.
- 그렇습니다. 신에게 맡길수록 삶은 더 흐려집니다. 알아서 해 달라’는 말은 결국 책임을 내려놓는 말이기도 합니다. 굿은 대신 결정해 달라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갈 것인지, 무엇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스스로 묻는 시간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굿의 종류를 기능적으로 나누지 않으시는데.
- 굿은 형식이 아닙니다. 삶의 국면마다 던져야 할 질문이 다를 뿐입니다. 재수굿은 돈을 불러들이는 굿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까지 가진 것을 어떻게 써 왔는지, 욕망이 삶을 잠식하고 있지는 않았는지를 묻는 굿입니다. 치병굿 역시 병을 쫓아내는 의식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보내는 신호를 읽어내는 자리입니다. 굿은 언제나 ‘왜 지금 이 질문인가’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신굿과 진오기굿은 어떤 점에서 가장 다른지.
- 신굿은 살아 있는 사람의 삶을 다룹니다. 지금 이 사람이 어떤 태도로 살고 있는지, 무엇을 외면하며 버텨 왔는지를 묻습니다. 진오기굿은 죽은 이를 위한 굿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남아 있는 사람이 붙잡고 있는 감정과 기억을 다룹니다. 놓아야 할 것을 놓지 못한 삶을 돌아보게 하는 굿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산 사람의 삶을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입니다.
◇액막이굿이나 해원굿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하시는데.
- 액이라는 말은 편리합니다. 모든 불운을 외부 탓으로 돌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액막이굿은 불운을 없애 달라는 의식이 아닙니다.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지를 묻는 자리입니다. 해원굿도 마찬가지입니다. 원한을 풀어달라는 부탁이 아니라, 내가 외면해 온 관계와 감정을 직면하는 의식입니다. 굿은 회피가 아니라 대면입니다.
◇병이나 불운 때문에 굿을 찾는 사람이 많은데.
- 고통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삶이 보내는 신호입니다. 굿에서 중요한 건 ‘없애 달라’가 아니라, 왜 이 고통이 지금 내 삶에 왔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 질문을 피하지 않을 때, 비로소 삶은 방향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런 질문이 실제로 치유로 이어질 수 있는지.
-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이미 치유는 진행됩니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태도 자체가 삶을 바꾸는 힘입니다. 치유는 빠른 해결이 아니라, 삶을 다시 견딜 수 있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선생님의 신굿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다고 들었는데.
- 사람의 불행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관계가 틀어지면 삶도 흔들립니다. 굿은 개인의 운명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가족과 조상,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흐트러진 균형을 다시 살피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조상굿과 가신굿을 중요하게 여기시는군요.
- 조상굿은 조상을 달래는 굿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뿌리 위에 서 있는지를 자각하는 의식입니다. 가신굿 역시 집안의 평안을 비는 행위가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들의 태도와 관계를 돌아보는 자리입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무속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 무속인은 기술자가 아닙니다. 굿은 기술로 깊어지지 않습니다. 무속인은 수행자입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 어떤 태도로 자기 삶을 견뎌왔는가가 굿의 깊이를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신굿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 제 굿은 신을 불러 운명을 바꾸는 의식이 아닙니다. 삶을 바로 보게 하는 자리일 뿐입니다.
무연사(巫緣師) 백경(白鏡) 이화자 선생. 그의 굿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오래 피할 수 없었던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사람은 다시 자기 삶 앞에 서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