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영덕사 천왕할매 신가(神家) ‘진작맞이’

  • 등록 2026.03.15 08: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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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축원·천존 의례 속 신명 내린 굿판… 농촌 신가 울린 살아있는 민속신앙

 

[한국기자연대 조동옥 기자] 14일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노동리 74-1의 한적한 농촌 마을. 들판 사이를 가로지르는 2차선 길 끝자락에  탁트인  신가 가 자리 잡고 있다. 영덕사 ‘천왕할매 신가(神家)’다.

 

이곳에서는 이날 새벽부터 북 장단과 향 냄새가 뒤섞인 가운데 한국 전통 무속 의례인 ‘진작맞이’ 굿판이 조용하지만 깊은 신명 속에 이어지고 있었다. 진작맞이는 굿을 시작하기 전 신을 맞이하는 의례로, 무속 의례의 문을 여는 가장 중요한 첫 절차다. 이날 신가 안에서는 천존(天尊)을 모시는 축원과 신명 내림, 살풀이 의식까지 이어지며 한국 민속신앙의 살아 있는 현장이 펼쳐졌다.

 

◇“사람들의 안녕을 위한 자리입니다”… 천왕할매의 첫 인사.

 

 

본지 취재진이 영덕사를 찾은 시각은 오전 9시. 새벽부터 시작된 의례는 이미 깊은 기운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신가 안에는 향 연기가 은은하게 퍼져 있었고 제단 위에는 술과 과일, 떡, 그리고 통돼지 제물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제단 앞에서 취재진을 맞이한 천왕할매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한 뒤 차분히 말을 건넸다. “멀리서 오셨네요. 오늘 신을 모시는 의례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자리니 함께 지켜보십시오. 신을 모시는 일은 결국 사람을 위한 일입니다” 말이 끝나자 신가 안에는 다시 고요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굿판은 이미 사람과 신의 경계가 열리는 순간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신명 받아라!”… 강 법사 눈물 속 축원.

 

 

‘진작맞이’ 의례는 강 법사와 송 법사의 축원으로 시작됐다. 북 장단이 낮게 울리기 시작했다. 둥… 둥… 둥…강 법사는 제단 앞에서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았다.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그의 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향 연기가 신가 안을 채우고 북 장단은 점점 빨라졌다.

 

잠시 뒤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온몸을 던지듯 외쳤다. “오늘 이 자리에 천존을 모시고 신명을 부릅니다.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신명 받아 주십시오” 강 법사는 곧 제단 앞 통돼지 제물 앞으로 걸어갔다.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힘주어 외쳤다.

 

“신명 받아라! 신명 내려라!” 그 앞에는 천왕할매의 아들이자 한국 탱화 화가인 이태석 씨와 제자·신도들이 숨을 죽인 채 서 있었다. 강 법사는 이태석(한국탱화) 씨를 앞으로 불러 세웠다. “신명이 길을 열어 주시고 하는 일마다 뜻을 이루게 하소서” 그 순간이었다. 굿판에서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던 강 법사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흐느끼듯 축원을 이어가다 통돼지를 세우는 의례에 들어갔다. 그리고, 제단 위 통돼지 제물이 바로 섰다. 신가 안에서는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굿판의 공기가 단숨에 바뀌었다. 마치 신명이 내려온 순간처럼 공간의 기운이 달라졌다.

 

◇천왕할매 축원… “막힌 길 열어 주소서”

 

 

이어 천왕할매의 축원이 시작됐다. 제자들과 신도들이 제단 주변을 둥글게 둘러섰다. 천왕할매는 두 손을 모은 채 천천히 기도를 올렸다. “오늘 이 자리에 천존을 모시고 신명을 맞이하오니 우리 자식 이태석의 길을 굽어살피시고 제자·신도·마을 사람들이 하는 일마다 뜻을 이루게 하소서” 신가 안은 숨을 죽인 듯 고요해졌다.

 

천왕할매의 기도는 다시 제자들과 신도들을 향해 이어졌다. “제자들의 앞길을 밝히시고 신도들의 가정에 평안을 내려 주시며 이 마을 사람들 모두 건강하고 복되게 살게 하소서” 잠시 뒤 천왕할매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학업의 길, 일의 길, 사람 사는 길마다 막힌 곳을 열어 주시고 재앙은 막아 주시며 복은 열어 주소서” 진작맞이 현장은 향 연기와 기도의 기운이 겹겹이 쌓이며 신가 안을 채웠다.

 

◇천존 의례… 하늘과 인간을 잇는 순간.

 

이어 천존 의례가 진행됐다. 천존 의례는 하늘의 존귀한 신격을 모셔 인간 세계와 신계를 잇는 무속의 핵심 의식이다. 제자들과 신도들은 두 손을 모은 채 제단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북 장단은 잔잔하게 이어졌고 향 연기는 제단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굿판은 점점 더 깊어졌다. 이 순간 신가 안에서는 사람·신·공동체의 안녕을 잇는 기도가 한데 어우러지고 있었다.

 

◇떠도는 넋을 달래는 고혼살풀이로 정점.

 

진작맞이 의례가 마무리된 뒤에는 또 하나의 의식이 이어졌다. 떠도는 영혼의 한을 풀어주는 고혼살풀이였다. 이날 살풀이를 선보인 이는 전통 예술인 김순연 명인명장. 그는 국가무형유산 제4호 경서남잡가 전수교육조교로 활동하는 전통무용 명인명장이다.

 

김 명인은 흰 수건을 손에 쥔 채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수건은 공중을 그리며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앉았다. 느린 장단 속에서 이어진 춤사위에는 억울하게 죽거나 떠돌던 영혼의 한을 풀어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현장을 지켜보던 한 참석자는 조용히 말했다. “춤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떠돌던 넋들이 위로받는 느낌이었다"며 “오랜 세월 민중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전통민속신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사람·신·영혼을 잇는 살아 있는 민속신앙.

 

 

이날 영덕사 신가에서 열린 의례는 단순한 굿판을 넘어 한국 민속신앙의 살아 있는 문화 현장이었다. ‘진작맞이'로 신을 맞이하고 축원으로 신명을 부르고, 천존 의례로 하늘의 기운을 모시고, 살풀이로 한과 액운을 풀어내는 굿판.

북 장단, 향 냄새, 통돼지 제물, 강 법사의 눈물, 천왕할매의 축원, 천존 강림 의례, 그리고 고혼살풀이 춤까지. 이날의 의식은 사람과 신, 그리고 영혼을 잇는 한국 무속 문화의 깊은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의례가 끝난 뒤 천왕할매는 다시 조용히 말했다. “신을 모시는 일은 결국 사람을 위한 일입니다. 전통은 지키는 사람과 마음이 있어야 이어집니다” 북소리가 잦아든 신가 안에는 여전히 향 냄새와 기도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한적한 농촌 마을에서 열린 이날의 굿판은 오늘도 한국 민속신앙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현장이었다.

 

 

조동옥 기자 mgs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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