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과 용맹은 학도의 보배 이 나라의 흥망은 우리의 생명
이 몸을 다 바치어 나라가 흥한다면
우리 학도 의용대 죽엄으로써 아 - 아 웃으며 꽃이 되리라
임전무퇴 교우이신 화랑도 정신 거룩하신 십용사 뒤를 받들어
백두산 하늘 높이 태극기 휘날릴 때
우리 학도 의용대 보람 있으리 아 - 아 웃으며 꽃이 되리라“
인천학생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에서 6월4일 오후 6시30분 신신 켠벤션에서 “인천학생 6,25 참전사” 제1권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인천학생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는 1996년 9월15일 조직되어 인천학생 참전 역사에 대해 발굴을 시작했다
인천학생 참전 역사 발굴을 시작한 이유는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 재학 중 자원 입대하여 참전한 어느 인천
학생 의문에서 시작하여 1950년 12월18일 인천학도의용대원 몇 명이 남하하여 6,25 조국수호 전쟁에 참여 했는지(?) 전사자 수가 얼마인지(?) 누가 전사했는지(?) 인천학도의용대를 이끌었던 학생들이 도대체 무순 의도와 어떤 과정으로 1950년 12월18일 인천을 출발하여 부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참전했는지(?) 의문에 대해 12년 동안 인천학생들의 참전역사를 발굴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번 출간된 “인천학생 6,25 참전사”에서 밝힌 수록인물 중에는 6년제 공립 인천공업중학교 6학년 재학 중인 형은 육군에 입대, 동생은 공립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 재학 중 해병 제1연대 제3대대 소속으로 1952년 10월31일 장단 전투에서 전사하여 1956년 8월에 제대한 형이 전사한 동생을 가슴을 묻고 인천에 돌아왔다
가좌울(현 가좌동) 해망재(바다를 바라보는 언덕) 동네의 6명 친구들
은 6,25 조국수호전쟁에 참전, 무사히 제대한 5명은 전사한 1명의 친구를 가슴에 묻은 체 고향으로 귀향.
인천학도의용대 남동지대장은 대원 50명을 이끌고 20일간 남하하여 부산에서 남동대원과 자원 입대, 남동제대장은 고려대학교 2학년생이어서 군에서 장교 임관을 제의 하였으나 거절하고 인천 남동에서부터 데리고 내려간 고향 동생들과 같이 사병으로 군생활을 마쳤다, 1950년 12월18일 남하 할 당시 부모님들께 부탁한 “어린 동생이나 다름없는 우리 자식들을 잘 돌봐 달라”는 말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수록하고 있다
이에대해 인천학생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이규원 위원장은 “학생의 신분으로 6,25 조국수호전쟁에 참전하여 조국 대한민국과 고향 인천을 지킨 것에 대하여 본 편찬위원회의 기록일 뿐이라”면서 “먼 훗날 이 기록을 바탕으로 후대가 선대의 목숨을 바쳐 조국과 고향 인천을 사랑한 마음을 기억해 주기 바라면서 본 편찬위원회는 이책을 10년간 모두 10권을 발간할 계획이라”고 힘주워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