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88주년을 맞이하여 민족대표 33인의 한분으로 독립선언을 주도한 권동진(權東鎭) 선생이 올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그 공적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된다.
이번 전시회는 근대민족운동관 내에서 3월1일부터 31일까지 권동진 선생을 비롯하여 손병희, 오세창, 한용운 등 8명에게 각각 징역 3년형을 선고한 당시 재판기록 등 다수의 사진자료 한달간 개최한다
선생은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일찍이 조국 근대화와 부국강병에 관심을 갖고 19세에 사관양성소에 입학하여 군사교육을 받았다. 이후 육군 초관을 거쳐 함안군수와 거문도 첨사를 역임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0여 년간 신식문물을 익혔다.
1906년 귀국한 이후 본격적으로 계몽운동에 참여하고, 손병희의 영향으로 천도교에 입도하여 도사로 활동하였다. 1918년 민족자결주의가 알려지자 손병희의 지시로 오세창과 함께 3·1운동을 계획, 추진하는데 앞장섰다.
1919년 3월 1일 종로 태화관에서 역사적인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여 세계만방에 ‘우리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널리 알렸다. 이로 인해 옥고를 치렀지만 민족독립 의지를 잃지 않고, 1927년 민족협동전선으로 신간회를 결성하여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폭발하자 신간회의 진상조사위원으로 민중대회를 개최하여 전국적인 독립운동 확대를 시도함으로써 재차 고초를 겪었다.
광복 후에도 임정 요인들이 환국하자 오세창과 함께 임시정부 환영 국민대회를 주도하고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한 국가 건설에 힘을 기울이다, 1947년 3월 9일 87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