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송국리유적 이중목책의 미스테리

오후 2시 관련 전문가 및 일반인에게 공개

한국전통문화학교 부설 한국전통문화연구소가 올해 4월에 착수한 부여 송국리유적(사적 제249호) 제12차 발굴조사의 성과를 23일(화) 오후 2시에 관련 전문가 및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부여 송국리유적은 1974년 실시된 석관묘 발굴조사에서 비파형동검, 동착, 옥, 마제석검과 석촉 등이 출토되면서 학계에 알려졌다. 이후 1975년부터 1999년까지 11차에 걸쳐 국립박물관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획기를 이루는 유적임이 밝혀졌다.

 


 

특히 송국리형 주거지, 송국리형 토기, 다양한 석기와 곡물 등 이전까지 확인되지 않은 유구와 유물이 출토되어 농경을 중심으로 한 정착사회를 특징으로 하는 ‘송국리형 문화’의 실체가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일본 야요이 문화에도 영향을 주어 한·일관계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이번 발굴조사는 송국리 선사취락지 복원 정비를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하여 송국리유적 53지구 및 54지구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이 곳은 송국리유적 중에서 발굴조사가 가장 집중된 곳으로 총 45기 중 27기의 주거지와 목책시설이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목책으로 둘러싸인 설상대지의 내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유적의 성격파악에 한계가 있었다. 이와 같은 미조사지점에 대한 조사를 완료하여 대지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이번 조사의 1차 목표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이전에 확인된 남쪽 및 북쪽 목책열과 나란하게 설치된 목책열 각 1기가 추가로 확인되어 이중목책시설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각 목책혈의 중심간격은 180cm, 목책열 간의 거리는 300cm 내외로 정연성을 보이고 있어 기존에 확인된 목책과 추가로 확인된 목책이 하나의 축조계획하에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남쪽에서 추가로 확인된 목책열은 유물포함층 위에 축조된 것이어서 송국리유적에 대지확장공사가 있었다는 기존의 학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편 이중목책으로 둘러싸인 대지를 구획하는 격벽시설도 확인되었다. 이 시설은 목책의 주축선과 같은 방향으로 설치되어 있는데, 가장 동쪽에서 확인된 목책혈과 나란한 지점에서 90° 회절하여 목책을 감싸고 도는 형상을 띠고 있다.

 


 

너비 15~30cm, 최대 깊이 60cm 내외의 도랑 형태를 띠는 이 시설은 풍화암반을 수직으로 굴착하고 내부에 직경 15cm 내외의 기둥구멍을 조밀하게 설치하였으며, 그 중 북쪽 목책을 감싸는 1호에는 2군데의 출입구도 마련되어 있다. 회절부로부터 서쪽 약 60m 지점에서 중간에 출입구를 설치한 격벽시설 1기가 추가로 확인되었는데, 목책 및 격벽시설의 진행 방향과 직교하는 점으로 보아 목책과 격벽으로 이루어진 대지구획단위는 이 지점에서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주거지는 총 13기가 확인되었는데, 평면형태를 보면 원형 5기, 방형 7기, 세장방형 1기이다. 특히 이전의 조사에서 확인되지 않은 주거지 간의 중복관계가 처음으로 확인되었는데, 35호 및 36호 방형주거지와 37호 원형주거지, 31호 세장방형 주거지와 32호 원형주거지의 중복관계를 통하여 주거지 축조의 선후관계가 구체적으로 규명되었다. 출토 유물은 적색마연토기, 발형토기, 완형토기, 호형토기, 저부유공토기 등 다량의 무문토기와 홈자귀, 돌화살촉, 돌칼, 삼각형 반달돌칼 등 송국리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토기와 석기가 대부분이다.

 


 

이 외에 삼국시대 가마 2기도 확인되었다. 삼국시대 가마는 백제 사비기에 운용된 것인데, 출토되는 유물은 자배기가 대부분인 점으로 보아 상업적인 목적으로 자배기를 전문으로 생산하던 가마로 추정된다. 송국리유적에서 기존에 확인된 백제의 주거지, 분묘 등 삼국시대 자료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진행한다면 청동기시대로 대표되는 송국리유적 연구에 한 테마가 추가될 전망이다.

 


 

한국전통문화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는 송국리유적이 전통문화 이해를 위한 교육의 현장으로 자리매김 하는데 필요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하여 현재까지의 조사성과를 종합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향후 유적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발굴조사와 집중적인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