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아' '아담아' 넌 어디 있느냐

성경적 율법 죄지은 자 그 삯은 사망이다

아담아 넌 어디 있느냐 (창세기3장 7~9절)


 

아담에 죄는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었지만 그 여정은 하나님이 모든 이를 축복하기 위한 은혜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큰 축복을 예비하였는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죄인을 용서 한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너무도 어렵다 성경적 율법도 죄를 짓은 자에게는 그 삯은 사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로로 삼아 인간에 죄를 용서하셨다

 


 

종교는 법이라는 틀에서 인간에게 죄를 짓는 사실에 대하여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경계를 요구하며 또한 인간이 이 땅에 사는 한 끝없는 죄에 욕구로 마음의 갈래를 통해 괴롭게 하는 사실에 부디‘치며 살아있는 양심으로 살아야 한다며 깨끗한 삶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요구에 응하며 갈망하지만 온전치 못한 본 모습을 통해 딜레마에 빠지며 자신이 잘못을 할 때마다 후회와 반성을 하고 살아간다.

 


 

그런 틈바구니를 통해 기독교는 회개를 요구하며 예수를 영접하라며 구원을 내세우고 있고 각 종교와 불교는 참회란 고행으로 업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런 인간에 몸부림은 죄라는 늪에서 인간이 풀어야할 숙제로 남으며  죄에 대한 유혹이 종교적 인간적 양심 틀 안에 판단가치 기준을 정하는 것이 대부분 종교인에 속한 사람이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죄에 대한 성질에 접근성 판단이 이해가 쉽게 될 것으로 본다.

 


 

물론 세상은 자기 기준과 여러 모양에 사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오늘 필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일반적 기준을 두고 이해하였으면 한다.

 

종교인은 종교인 되로 학자는 학자대로 양심적인 사람들은 그 사람대로 죄에 대한 기준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사회 통념상 법이란 기준 안에서 판단하고 판단 받는다.

 

이 기준으로 묻고 싶다 당신은 정말 깨끗한 사람인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인가 신과 같은 존재로 죄라는 사실 앞에 죄를 당당이 이길 수 있는 인간인가 이 물음은 죄 앞에 모두를 당혹하게 만들 것이다 성경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한 여자를 당시유대 종교인들은 율법은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돌로 처 죽이라고 하였는데 랍비여 (예수) 당신은 이 여자에게 어떤 심판을 하겠습니까.

 


 

법에 판단기준으로 물었지만 예수의 대답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는 이 여자에게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다.

 


 

그 모두는 놀라 돌을 내려놓고 돌아갔다 바로 인간의 기준이 죄라는 틀에서 명백한 추함을 알려주고 그 사실을 알게 하였다.

 

그래서 양심을 칸에 모양을 만들어 그 안에 양심을 넣어보자 과연 내 자신은 인생을 살면서 양심진실 칸에 얼마나 채워 놓을 수가 있을까 필자에 단호한 고백은 늘 변하는 인간적 양심은 옷과 같이 낡아지는 누더기라고 확신한다.

 


 

세상 아래 완벽한 양심은 없다 인간이 만든 법은 완전한 법이 없듯이 완전한 양심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물음에 답을 찾아보자 우리 가슴을 메스로 열어 양심 안을 들어다 보자 세상이 보일 것이다 필자는 울었다 이리도 허점을 가진 온전치 못한 양심에 소유자인지 정말 누더기 같은 양심에 옷을 입고 포장하며 살아가는 내 자신을 보며 내 자신도 용서 못하는 주제에 남을 판단하고 용서할 수 있을까 남을 용서할 수 있다면 내 자신에게 먼저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내 자신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지 못하는 양심이 없다면 남을 용서하는데 어떻게 너그러운 용서가 나오겠는'가 용서란 천자 만별 모양이 있지만 인간에 한계는 무한이 아닌 유한 그 자체이기 때문에 이제 나의 근본 체질 서두를 통하여 알게 되었다 나의 한계를 합리화가 아닌 솔직한 양심으로 부족한 나를 인정하려 한다.

 


 

그리고 그 발원지가 어디서부터 왔으며 어떤 방향으로 인간이 갈 것인가 방향을 정하고 진실해 지고 싶다 진정 인간이 강해 질 수 있는 길이 어디서부터 나오며 인간의 위대함은 무엇일까 그 발원지를 찾아 너무도 먼 길을 돌아서 왔다

 


 

필자가 격은 생활 전반에 고백을 말한다면 난 너무도 약한 존재다 강해지려고 했던 내 무지함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 이였는지 어금니를 악물고 살아갈 때는 아무도 믿지 않고 외롭게 나만을 믿고 살았다 그러나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그 존재끼리 돕고 사는 방법을 다소나마 배워 외로움이 덜 하지만 그 역시 노력은 가상하지만 완벽하고는 거리가 너무도 멀기만 하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진정 약한 사랑을 깨닫고 실행으로 이루어질 때 약함이란 단어가 얼마나 강한지 그 비밀을 성경에서 찾았기 때문에 그 희열과 진정한 거듭남이란 영혼에 구원이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이 죄를 통해 완성에 정복이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안 순간 아담에 죄가 어떻게 탕감 받았으며 구원이란 사랑이 인간에게 도달되었는지 알게 된 것이다.

 


 

필자 주장대로라면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한 사람에 패배주의 스토리 판단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대중적 의미와 한 개인에 스토리가 담겨져 있는 약함을 사랑하고 싶다 내가 상대보다 강할 지라도 사랑이란 약함으로 상대를 대한다면 인자무적이 되리라 그러나 그 약함을 표현하기란 나에게 완벽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교훈을 통해 예수가 보여준 필자에 대한 사랑을 기억한다면 그 분을 닮아가기 위해서 바울이 돌로 맞고 복음을 전하며 순교자 길을 갔듯이 인내로 참으며 사랑을 약함으로 배우는 참 진리를 통해 구원에 길을 걸어가는 현명한 지혜를 터득할 수가 있다.

 


 

이제 필자가 종교적 기독교가 아닌 성경적 복음 안에서 그 해답을 찾았기에 공감하는 독자와 함께 누리기를 원하며 함께 사랑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기독교 유신론은 신의 창조로 에덴이 만들어 졌으며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생령을 불어넣어 아담과 이브가 인류최초로 탄생된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한다 맞다 하나님은 사랑이란 존재로 죄를 극으로 미워하신 분이지만 인간에게 하나님과 같은 의지를 주어 동물과 다른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간 스스로 의지는 양육강식에 동물과 다르기 때문에 선택에 권한을 주어  완벽한 인류 재탄생을 만들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많은 자녀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왕국을 만들고자 아담인 인간에게 그림자인 에덴을 보여 준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보듯이 아담에 씨족인 흰 옷 입은 무리가 구원받아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양하는 모습이 너무도 생생이 그려져 있다.

 


 

진정한 진화는 여기에 있으며 인간에 유한적인 지식은 다윈학설 정도로 표현을 그려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진정한 진화와 왕국은 성경을 통해 구원의 은혜 속에  재탄생이란 사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짐을 안다면 타 종교를 가진 분들과 학문적 유물론에 속한 분들과 믿지 않는 분들에게 정말로 도전이 되었으면 한다.

 


 

이 글을 읽으며 반론을 제기하겠지만 내가 체험한 신앙관을 절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다 그 점을 먼저 이해를 구하며 필자에 글을 읽고 공감하는 독자가 있다면 비난이 올지라도 겸손히 받고자 한다.

 


 

필자는 학문이 적은 사람이다 겨우 초등학교 정규과목과 중학교 검정고시 늦은 나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지만 성경을 접하게 되면서 필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인지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부끄러운 과거가 뼈‘속 깊이 주홍글씨로 남아 그 흔적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는 죄 많은 인생이다 인생을 허비한 대가를 계속적으로 지불하고 살아가야할 운명 이였지만 하나님의 용서가 있었기에 그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 줄 알며 그 분으로부터 오신예수님이 십자가에 내 대신 죽어 용서를 받았다.

 


 

그래서 용서란 방법을 겨우 알게 되었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모자람이 아직도 인간적 갈등으로 살아가는 부족한 나를 발견 고민하고 살지만 하나님을 향한 통로를 발견하고 알았기에 겨우 나를 용서하는 방법과 남을 용서하는 방법을 알았다

 


 

필자는 자신 있게 전파 하고자한다 골고다언덕을 오르며 십자가를 지고가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라고 그 분은 대중에게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너무도 약했다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 죽음 앞두고 땀방울이 핏물이 되어 기도를 통해 아버지께 그 잔을 피할 수가 있으면 피하게 하여 달라는 기도는 사람에 몸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은 자를 살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눈먼 자가 눈을 뜨는 기적을 보이던 위대함은 어디로 살아지고 고통에 잔을 마셔야 하는 약한 고백을 통해 나의 간구하는 뜻대로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라는 순종이란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예수님이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를 지고 못 박히며 창으로 옆구리에 찔리며 물과 피를 모두 솟아내시고 죽음을 맞이하셨던 것이다

 


 

그 분은 권력을 가진 자들을 대항하지 못해 로마병사들을 이길 수 없어 약한 모습을 보이며 죽음을 맞으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 로마치하에서 해방을 맞이하는 줄 알았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장악한 이방인을 예수님을 통해 선민족인 유대인을 구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인간에 한계로 본 시각이며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방법은 유대인이 아닌 세상 모든 이방인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무리까지 구원하시기 위한 위대한 포석을 모르는 인간의 무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선 민족이 아닌 이방인으로 태여‘난 나를 대신하여 피 흘려 죽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예수 그리스도는 아시고 십자가에 참혹한 형벌을 받는 순종에 약함을 보이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대항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약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다 하시며 죽음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십자가 형벌은 범죄자에게만 주어지는 형벌로 그들에 동류로 취급받으시며 수치를 감당하고 하나님의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였던 것이다.

 


 

그럼 예수님의 임무완수는 과연 무엇인가 예정된 서곡 이였다 하나님은 성경 창세기를 통하여 잘못 없는 어린양을 죽여 아담에게 가죽옷을 짓어 입히시며 그 사실을 알려주었으며 천지창조가 땅이 흑암으로 혼돈된 가운데 있을 때 빛과 어두움을 나누고 에덴이라는 동산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인 아담을 창조 후 이브 탄생을 시켜 온전한 한 몸을 이루는 오늘에 구원받은 거룩한 교회무리가 모여 있는 그림자로 아담이 잠들어 있을 때 갈비뼈를 통해 이브를 만들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음을 통해 잠들어 있을 때 부활을 통해 구원이란 영원한 생명을 이브에 형상으로 예수님의 배필인 교회가 되었다.

 


 

오~ 이 얼마나 위대한 탄생인가 오~ 이 얼마나 온전한 하나님의 진화론인가 이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할렐루야 하나님 우리 모두를 구원에 길로 인도 하소서 내 죄가 십자가에서 2000년‘전 용서가 되었음을 거룩한 하나님을 다시 찬양하며 모두 구원받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