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안 '나 수사 않겠다'

1만5천여명 경찰 수갑 등 반납... 집단행동 나서...

정부가 전날 발표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경찰이 크게 반발하는 가운데 여야 정치권이 입법권에 대한 도전이라며 일제히 반대하고 나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경찰의 주요 내사사건에 검찰의 사후 통제를 받도록 한 조정안 핵심 내용이 지난 6월 형사소송법 개정 방향에 역행한다는 게 여야의 일치된 목소리다. 특히 한나라당 지도부가 조정안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입법 강행의지를 보이는 청와대와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이 경찰 내사사건까지 수사 지휘하겠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내사 사건은 경찰에게 전권을 주는 게 옳다”며 총리실에 조정안 재검토를 요구했다.

김기현 대변인도 “경찰에 재량권을 주는 형태로 형소법을 고쳤고 시행령을 정부에 위임한 것인데 시행령이 거꾸로 갔다”며 “국회 입법권을 역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고위정위회의에서 “일방적으로 검찰 편을 들었다”며 “검찰을 견제하는 형소법 개정 취지를 훼손하는 개악이고 이명박 정부와 정치검찰이 결탁해 경찰 수사권 독립 취지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도 전날 전체회의에서 입법예고 유예를 요구했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조정안 성격상 검찰과 경찰 어느 쪽도 만족할 수는 없다”면서 “불만이 나오고 있지만 이미 조정안이 나온 상황에서 다시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도 “어느 한쪽 요구를 수용하면 또다시 수사권 조정 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조정안 수정은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권 반발이 법제화 과정에 반영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조정안 내용이 담긴 ‘검사의 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지휘 및 사법경찰관리의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안’은 대통령령이어서 국무회의 의결로 확정되는 만큼 국회의 개입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이날 정오까지 전국 수사경찰의 21.04%에 달하는 약 5.000명이 ‘수사경과(警科) 해제 희망원’을 제출했다. 검찰이 수사권을 가져갔으니 수사업무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전체 10만 경찰 중 2만2000여명이 수사경찰이라서 포기서가 다 수리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케이블TV 범죄드라마 ‘사냥꾼 이대우’의 실제 주인공인 서울 중부경찰서 이대우 경감도 수사경과 포기서를 냈다. 이 경감은 “조정안이 이대로 통과되면 더 이상 범죄사냥을 할 수가 없다”며 수사경과서와 형사의 자존심인 수갑 등을 반납하고 자신이 운영하던 인터넷 카페 ‘범죄사냥꾼’도 폐쇄키로 했다며 분통을 호소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조정안을 성토하고 국회의원들을 압박하는 작업도 시작됐다. 경찰 출신 이인기 국회 행안위원장 홈페이지에는 조정안을 바로잡아 달라는 글이 오전까지 100건 이상 올라왔다. 경찰 일각에서는 형소법 개정안을 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형소법 개정 취지를 행정부가 하위법령인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훼손했으니 더 강한 법률로 시행령을 뒤엎자는 것이다.

지난 6월 형소법 개정 때처럼 일선 경찰관들이 집단토론회를 열고 청원서를 국회에 전달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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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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